AI 에이전트 시대, 결제의 핵심은 ‘누가’ 대신하느냐
AI 에이전트가 상품 검색과 비교를 넘어 예약·주문·결제까지 수행하는 시대가 다가오면서, 온라인 거래의 핵심 쟁점이 결제 수단에서 결제 주체로 옮겨가고 있다. 소비자가 직접 선택하던 구조에서 AI가 대신 거래를 실행하는 구조로 바뀌면 편의성은 커지지만, 그만큼 신뢰를 어떻게 보장할지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른다.
최근 글로벌 결제업계는 이런 변화에 맞춰 AI 에이전트가 실제 결제망을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오픈AI는 스트라이프와 함께 AI와 판매자가 주문을 처리하는 ‘에이전틱 커머스 프로토콜’을 공개했고, 비자는 AI 에이전트가 자사 결제망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마스터카드도 에이전트 페이 체계를 추진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세계 최대 실시간 지급결제망인 UPI에서 AI 에이전트가 일정 범위의 소액결제를 사용자의 매번 승인 없이 처리하는 시스템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8월 UPI 거래 건수는 월 245억건을 넘어섰다.
문제는 AI가 거래를 대신할수록 기존 인증 방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전자상거래의 신뢰는 결제자가 본인인지, 본인이 승인했는지를 확인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AI가 거래 주체로 들어오면 어떤 AI가 누구를 대신하는지, 실제로 권한을 부여받았는지, 그리고 어느 금액과 상품군, 거래 조건까지 허용됐는지를 함께 확인해야 한다.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던 인증 체계가 AI의 신원과 권한까지 검증하는 방식으로 확장돼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이용자가 AI에게 ‘매달 생필품은 10만 원 이내에서 알아서 주문해 달라’고 지시했는데 AI가 80만 원짜리 가전제품을 구매했다면, 이를 정상적인 위임 거래로 보기는 어렵다. 사용자가 AI에 구매를 맡겼다고 해서 모든 상품과 금액에 무제한 권한을 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AI에게 결제 수단을 통째로 넘기기보다 금액, 상품군, 사용 기간, 거래 조건 등을 미리 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만 거래하도록 하는 권한 기반 결제에 주목하고 있다.
비자의 ‘신뢰할 수 있는 에이전트 프로토콜(Trusted Agent Protocol)’과 마스터카드의 Agent Pay for Machines, 오픈AI의 결제 관련 구상도 이런 방향에 맞춰져 있다. AI가 사용자를 대신해 거래할 때 에이전트의 신원과 사용자가 부여한 권한을 확인하고, 그 범위 안에서만 결제가 이뤄지도록 하는 구조다. 거래 과정의 추적 가능성도 중요하다. 사용자가 어떤 조건을 제시했고, AI가 어떤 권한을 받았으며, 어떤 기준으로 상품을 골랐는지, 결제가 어떻게 승인됐는지를 남겨야 책임 소재를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부정거래 탐지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기존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은 접속 지역, 기기, 결제금액, 거래 빈도 등 사람의 평소 패턴과 다른 행동을 중심으로 이상 징후를 찾는다. 하지만 AI는 짧은 시간에 여러 사이트를 오가며 다수의 거래를 실행하는 것이 오히려 정상일 수 있다. 반대로 탈취한 권한을 이용해 자동거래를 벌이는 새로운 형태의 사기도 가능하다. 결국 AI 시대의 거래 신뢰는 신원 확인, 권한 통제, 거래 추적, 책임 기준, 부정거래 탐지를 하나의 체계로 묶는 데 달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진 메타브리프 기자 sieghaft@gmail.com